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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01
원인추적 없이 '운송차질'만 부각, "상당히 불쾌해"
2009년 12월 01일 (화) 곽상아 기자 nell@mediaus.co.kr
철도공사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로 철도노조가 지난 26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공사측은 170여개의 단협 조항 중 무려 120여개의 항목의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근무체계 변경, 비연고지 전출허용, 정원관련 협의권 삭제 등 하나하나 마다 논란의 여지가 큰 사안이다. 공사측은 임금제도와 관련해서도 성과성 연봉제, 임금피크제, 직무성과급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고 한다.
▲ 철도노조가 사측의 단체협상 해지통보에 맞서 총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서울지역 철도노동자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
다분히 정부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공사의 단협 해지는 이명박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공공부문에서 선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노조 죽이기'의 일환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단협 일방 해지 등 전례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배경의 심각함(?)과 달리 방송3사의 메인뉴스는 '시민불편' '운송비상' '산업계 타격' 등 파업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만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노사의 입장은 '단순 나열'로 처리될 뿐이다. 노조가 왜 파업을 하게 됐는지, 공사의 단협 해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추적해 보도하는 방송사는 한곳도 없었다.
철도노조의 파업 첫날인 지난 26일, 방송3사의 메인뉴스는 '시민불편' '화물대란' 등을 집중적으로 전달했다.
▲ 왼쪽부터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26일 KBS, MBC, SBS 메인뉴스
MBC 역시 7번째 꼭지 <화물 수송 차질>에서 "사측이 일방적으로 (단협을) 해지했기 때문에 앞으로 노조와 사측 간에 최소한의 성실의무, 평화의무, 신의의무도 없어졌다" "노조와 적당한 타협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노조와 사측의 입장을 단순 전달했다.
하지만 이런 단순 나열만으로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힘들다. 철도노사의 갈등으로 인해 화물운송에 비상이 걸리고 시민들이 불편에 처했다는 것 정도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SBS에서는 이같은 단순 나열도 찾아볼 수 없었다. SBS는 6번째 꼭지 <화물운송 사실상 중단>에서 화물운송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을 전하며 "물량이 멈춰있는 만큼 우리 직원들은 그만큼 속이 타는 거죠"라는 화물운송업체 관계자의 말을 내보냈다. 노조의 파업 이유도 기사 말미에 "철도 공사 노사가 임금조정과 노조전임자 문제 등을 놓고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운송대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27일부터 30일까지의 방송 보도 역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화물 운송에 이어 이번엔 일부 여객 수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28일 KBS 7번째 꼭지 <여객수송도 차질>), "사흘동안 화물운송 차질로 인한 피해액은 22억원이다. 지난 2006년 3월의 나흘간 철도파업 기록을 깨는 역대최장기 철도파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KBS 29일 2번째 꼭지 <급한 화물 우선 수송>), "철도노조의 파업이 나흘째로 접어들면서 승객들의 불편이 본격 시작됐다"(29일 MBC 톱 <새마을.무궁화호 60%만 운행>), "국내 물류수송 중 철도가 맡고 있는 비중은 약 8%에 불과하지만, 시멘트와 석탄, 철강 등 생상활동과 밀접한 화물이 주를 이루고 있어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산업활동의 위축이 우려된다"(30일 MBC 두번째 꼭지 <생산위축 시작>), "철도수송 의존도가 높은 시멘트, 석탄, 철강, 유류 업계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30일 SBS 톱 <파업 닷새째...수송난 가중>) 등 '물류차질' '시민불편' '생산위축' 등의 보도만 넘쳐난다.
방송사들은 28일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생 직장을 보장받는 공기업 노조가 파업하는 것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단순 전달하기도 했다.
특히 KBS는 29일 3번째 꼭지 <"손실 최소화해야">에서 "파업이 예견된 상황에서 화물운송에 대한 대비책을 철저하게 세우지 못한 것 같다. 파업에 따른 국가적 손실과 국민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재차 전달했다.
이에 대해 KBS시청자평가원을 지낸 공공미디어연구소 윤익한 연구원은 "최소한 철도노조가 왜 파업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번 파업이 '역대 최장기'라는 점을 뉴스로 다루려면 기존의 파업과 다른 양상과 성격, 양측의 팽팡한 입장,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등까지 고려해 역사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다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연대 전규찬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은 "현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공공기관 민영화와 규제완화'에 노조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사측은 이들과의 대화채널을 없애버리고 최후의 수단인 '파업'을 취하게끔 유도하고 있다. 이때 조중동은 준비된 프레임을 가지고 노조를 이기적 집단으로 몰고가는데 방송사들 역시 '시민불편' '물류차질'과 같은 고정된 프레임으로만 보도한다"며 "답답한 노릇"이라고 밝혔다.
철도노조 백남희 대변인도 "방송사들이 파업의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고, '열차 운행률 저하' 등의 파업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만 집중보도하고 있다"며 "상당히 안타깝다"고 밝혔다.
백 대변인은 "파업의 본질을 봐달라. 노동자들의 전체 삶을 틀지우는 단협을 일방 해지한 것은 노동자로서의 기본권리를 완전히 무시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런 일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음에도 어느 언론도 공공기관의 일방적 단협해지가 갖는 의미와 심각성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송사들이 "노조가 해고자 복직과 전임자 수 유지 등 잘못된 관행을 고집하고 있어 단협해지가 불가피했다"고 사측의 입장을 전달한 부분에 대해 백 대변인은 "해고자 복직은 상시적으로 곪아있는 문제였을 뿐 이번 파업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전임자 문제 역시 법령 개정에 따라 진행될 사안으로 이번 파업과 상관없는 문제"라며 "방송사들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사측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은 것을 그대로 전달해 상당히 불쾌하다"고 밝혔다.
현재의 방송뉴스만 보면, 철도노조가 '왜' 파업을 하게 됐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일반 시민들의 '교통 불편'에는 호들갑을 떨면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철도노조원들의 현실에는 주목하지 않는 방송뉴스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철도노조 파업 사태가 단순히 개별사업장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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